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쿄 대공습 (문단 편집) === 전략적 의의 === 제공권을 획득한 상태에서 치밀한 준비 속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폭격의 성과는 매우 컸다. 미군이 이런 무차별 공습을 통해 의도한 바는 아래와 같다. * 일본 국민의 동요: 폭탄을 퍼부은 미국 측에선 일인십살 [[죽창]] 운운하던 [[결호작전|최후 항전 이야기]] 때문에 사실 이쪽으로 별 기대는 안 했다고 하는데 일본 쪽의 기록에 따르면 국민들이 대단히 동요한 모양이다. 일본 국민들에게는 [[진주만 공습]], [[난징 대학살]], [[이오지마 전투]], [[임팔 전투|동남아에서의 일본 육군의 ~~멍청한~~ 몰살]] 등등 이야기는 그냥 일본 밖 멀리 있는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했음.' 정도로 남 일처럼 취급되었고 이오지마 전투 전까지만 해도 전쟁을 하는 국가 같지가 않았으나 폭격 이후로 비로소 국민들은 '전쟁'을 실감했다. 폭격 성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이 지켜주는 나라 운운하는 믿음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초장거리 폭격기들의 공습으로 완전히 깨졌고 르메이가 그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정답을 찾아 일본의 수도를 싹 태워 버림으로써 이 대공습은 핵 투하와 함께 대부분 일본 국민들이 기억하는 '우리가 직접 피부로 접한 전쟁'의 이미지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외계인들이 지구로 침략하면 [[도시 파괴|일단 닥치고 도시를 때려부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쟁에 나간 아들이 덴노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높으며 가진 돈도 많아 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전쟁 지지자들은 이후 미군이 일본 도시 전략폭격을 본격화하고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자 폭격을 피해 다 시골로 튀어 버렸다. 당연히 피해는 도망가지 못한 하층민,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고 순식간에 일본 전역으로 확대된 융단폭격은 국민들의 전쟁의지를 아주 크게 꺾어 버렸다. 그럼에도 대본영에게 반기를 들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 규슈 상륙작전([[올림픽 작전]]) 시행을 위한 준비: 규슈 상륙 전에 이와 같은 [[네이팜]] 폭격과 상륙지에 핵 투하가 예정되어 있었다. 미군이 투입될 상륙작전지에 핵을 사용하려 한 것은 그 당시 방사능의 위험을 [[맥아더]] 장군을 포함한 장성들과 과학자들이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 군 시설과 군수공장의 괴멸: 이미 도쿄는 관동대지진으로 박살난 뒤 재건되었는데 누가 재건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나 시가지 내에 민간인 거주지와 군사시설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었다.[* 현대에도 일본 자위대 기지나 시설 등이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오이타 분둔지, 네리마 주둔지 등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렇게 자위대 기지가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이유는 [[스프롤 현상|어디까지나 자위대 기지가 먼저 들어서고 그러고 난 뒤에야 그 주변에 민간 거주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기 때문.]] 이런 경우는 [[제네바 협약]]에 어긋나지 않아서 딱히 뭐라고 못한다.] 하지만 이런 무질서한 도시계획은 미약한 산업기반만으로 군국주의 국가로 진화한 일본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형 공장을 세우고 이를 채울 최신 산업설비를 갖출 능력이 없이 수공업 따위에만 의지하니 주택가와 공장이 섞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44년 즈음에는 일본의 전쟁 경제에서 [[가내수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부품과 장비의 상당부분은 직원 250명 이하인 소규모 공장에 [[하청]]을 맡기는 식으로 조달했다. 이런 소규모 공장은 도쿄에 밀집되어 도시 전체 공업 생산량의 50% 가량을 차지했다." [[http://aupress.maxwell.af.mil/digital/pdf/book/b_0020_spangrud_strategic_bombing_surveys.pdf|United States Stategic Bombing Survey, 1946, p. 87.]] 표준화와 대량 생산 분야에서 한참 앞서 있던 미국 입장에서 250명 규모의 공장은 사실상 가내수공업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서울에도 남아 있는데 을지로 5가에 있는 [[주한미군]] 공병대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병영을 그대로 쓰고 있다. 다른 사례를 들자면 을지로 한복판의 공구상가나 소규모 영세공장들과 주택들이 마구 뒤섞인 [[독산동]]같은 곳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또 21세기와 비교해 보면 대중교통을 비롯하여 노동자들이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직장과 주거 공간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할 필요성이 더더욱 컸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특히 2차대전 이전의 일본 자동차공업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었고 2차대전 중으로 가면 아예 연료부족으로 [[목탄]]버스가 일상적으로 운행되던 시절이기 때문에 직주근접[* 職住近接 : 직장과 주거 공간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면 노동자의 통근을 보장하기가 힘들었다. 일본 쪽 기록에 따르면 이전까지의 고고도 폭격으로도 이미 꾸준히 피해를 입었지만 미군 수뇌부에서는 일본의 전투기 등 병기 생산능력을 소멸할 것을 폭격작전 실무자들에게 요구했다.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사실 저 밑의 스즈키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하루노보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게 순전히 자기합리화에서 나온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이면 "옆집 스즈키네"라는 르메이의 발언은 폭격 당시 미군 장성들의 실제 관점과도 일치했다. 당시 일본 공업지대는 [[산업혁명]] 당시 영국처럼 거주지역과 구분되지 않았다. 특히 파괴 전까지 항공기 생산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일본의 항공기 생산 공장들은 미군 장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당시 국제법상으로도 위법은 아니다. 방어되고 있는 군수공장과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집을 박살내야 하는데 원칙대로라면 군수공장만 노려야겠지만 그런 시설과 노동자 주거지를 민간인 주거지에 혼합해 자국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만들어 버린 일본 때문에 민간인 희생이 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은 민간인을 동원한 인간 방패 전술을 실제로 쓴 적이 있다. 일본군의 민간인을 동원한 인간방패 전술에 대해서는 [[사이판 전투#s-4]] 문서와 [[오키나와 전투#s-4]] 문서를 참고하자. 특히 사이판 전투.[* 사이판과 오키나와의 공통점은 인간방패를 쓴 일본군과 민간인들의 자살극이다.] 그러나 민간인들의 자살 동기에 큰 차이가 있는데 오키나와 전투의 경우 민간인들의 대규모 자살극 같은 건 있었으나 덴노의 직접 명령 같은 건 없었고 그전까지 [[귀축영미]] 운운하며 일본 군부가 행한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에 대해 민간인들에게 한 세뇌가 원인을 제공했다.[* 실제로 [[옥음방송]]을 듣고 자결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이판에서는 아예 [[히로히토]] 덴노가 섬에 거주하던 민간인에게 자살명령을 대놓고 내렸다. 그 도조 히데키조차 이 명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 자살 명령장을 감추려고까지 했을 정도. 그런 데다 '''오키나와 전투의 경우 일본 정부가 [[역사 왜곡]]을 시전한 바도 있다. 자기들이 류큐어 사용자나 미군의 삐라를 주운 주민들을 스파이로 규정해서 몰살시켜 놓고서.''' * 또한 도쿄 대공습은 이전까지의 '미군이 평가하기에는' 별 효과가 없었던 (일본군의 관점에서는 "고고도 폭격기를 격추할 수 없어!"라며 좌절한 전투기 파일럿이 적지 않았다지만) 일반 폭탄을 이용한 고고도 수평 폭격 대신 미군의 공습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냈던 기념비적인(?) 사건이며 합참에서는 사실상 독립된 군대 취급받으며 마지막 방점만 찍으면 됐던 육군 항공대의 완전 독립 후 미 공군 창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급진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햅 아놀드는 성과부진으로 맥아더와 어니스트 킹등에게 그런 성과없는 삽질 관두고 B-29를 자기들 작전에 동원하라고 엄청나게 쪼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